2021/고난주간

2021년 3월 31일 (수) 하루살이 고난주간

개척자 pathfinder 2021. 3. 31. 01:16

Navigation통독 (누가복음 19:41–44, 우리말) 41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예수께서 그 마을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며 42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네 눈에는 이것이 지금 가려져 있구나. 43 네 원수들이 네 주위에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너를 포위하는 날이 올 것이다. 44 그들은 너를 짓밟고 너와 함께한 네 자식들도 짓밟을 것이다. 돌 위에 다른 돌 하나라도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Equipment 주제 "눈물"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가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우십니다. 통곡하셨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그 눈물은 자신이 곧 겪게 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닥칠 고통을 뒤로하고 잔인한 일들을 겪게 될 불쌍한 백성들, 자신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들 때문에 슬피 우십니다. 

A.D. 70년 초 유대 열심당이 무력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로마군의 예루살렘 공격이 시작됩니다. 로마 장군 디도 Titus는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학살을 자행합니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니 그 이상의 이윤을 만들어내던 헤롯의 성전은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폐허가 됩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이 찾아오신 때', 즉 그들에게 닥칠 심판을 미리 알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며 로마 장군 디도는 성전 벽의 서쪽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군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Operation 적용  남겨진 성전의 벽, 그 벽은 지금 통곡의 벽이라 불립니다.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 앞에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소원을 적어 벽에 꽂아놓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웁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이 위선적으로 느껴집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게 저질러온 만행은 과거 로마제국이 그들을 학대하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통곡은 벽 앞에서 외치는 자기 만을 위한 메아리입니다. 지금 교회도 통곡의 벽 앞에선 유대인의 위선을 행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통곡할 수 있지만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그리스도인들...

단 한번도 신나게 웃었다는 기록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웃지 못해서가 아니라 웃으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자들, 그들의 지배 아래 가난하고 억압받으며 신음하는 사람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을 보며 예수님은 항상 슬퍼하셨을 것입니다.

고난주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과 울음을 배워야 합니다. 벽을 넘어, 그 너머의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벽을 부수고 그 뒤에 있는 아무나를 위해 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연약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위해 흘릴 수 있는 예수님의 눈물, 그들을 위해 통곡할 수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울음을 내게 주시옵소서